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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무리 마음이 아파도 뒤 돌아보지 마세요,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영화 2024. 4. 15. 21:22

    아무리 마음이 아파도 뒤 돌아보지 마세요,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터널 이미지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터널을 바라보는 장면

    '센'과 '치히로'

    처음 이 애니메이션 제목을 봤을 때는 '센'과 '치히로'라는 두 등장인물의 모험인가 했어요. 곱씹어볼수록 더욱 의미 있는 제목입니다. '센' 아니 '치히로'의 행방불명 이야기를 함께 시작해 보겠습니다. 부모님을 따라 시골로 이사를 하게 된 소녀 '치히로'는 낯선 길 끝에 하나의 긴 터널 앞에 도착하게 됩니다. 모험심이 강한 아빠는 가족들과 함께 터널 끝으로 가보기로 하죠. 터널 건너편은 엄청나게 넓은 공간이 있었는데요. 무척 맛있는 음식 냄새에 이끌려 간 곳에서 부모님은 맛있는 식사를 하게 됩니다. 한편 서성이던 '치히로'는 엄청나게 큰 건물을 발견하고 둘러보다가 잘생긴 소년과 만나게 되죠. 그런데 소년은 '치히로'를 보자마자 마법을 부려 시간을 벌어주면서 얼른 도망가라고 이야기합니다. 놀란 '치히로'는 부모님에게 달려가지만, 부모님은 이미 돼지로 변해있었습니다. 귀신이 나타나는가 하면, 다시 돌아가려 해도 멀쩡했던 길이 강으로 변해버리는 등 주변은 점점 이상해집니다. 게다가 '치히로'의 몸은 투명해지기까지 합니다. 주저앉아 울고 있는 '치히로'의 옆으로 아까 만난 소년이 다가와 도움의 손길을 내밀죠. 소년과 '치히로'는 거대한 온천장으로 함께 숨어 들어갑니다. 이곳은 온갖 잡신들과 요괴들이 들어와서 먹고 마시고 노는, 거대한 신들의 온천장이었습니다. 소년은 '치히로'에게 부모님을 찾기 위해서는 이곳에서 일을 하면서 기회가 오길 기다리라고 합니다. 일을 하지 않으면 마녀 '유바바'가 동물로 만들어버린다고 알려주죠. 그러면서 소년은 어렸을때부터 '치히로'를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녀를 도와준다는 이상한 말과 함께 본인의 이름이 '하쿠'라는 것도 말해줍니다. 어쨌든 온천장에서 일을 하기 위해서는 '유바바'에게 허락을 맡아야 하죠. '유바바'를 찾아가 허락을 맡게 된 '치히로'는 이곳 직원으로서 '센'이라는 새로운 이름을 얻게 됩니다. '하쿠'는 '치히로'에게, '유바바'는 이름을 빼앗아 지배하기 때문에 진짜 이름을 숨기고 '센'으로 살라고 당부하죠. 열심히 청소를 하던 '센'은 '가오나시'와 짧은 인사를 나누기도 합니다.(가오나시는 주인공보다 인기가 많은 캐릭터가 됩니다.) 그날 밤 온천장에는 엄청난 신이 방문하게 되는데요. 악취가 진동하는 오물의 신을 담당하게 된 '센'은 정성을 다해 목욕을 돕는데요. 그의 몸에 박혀있는 무언가를 발견하고 온천장의 모든 직원이 힘을 합쳐 빼내자, 오물의 신 몸에서 엄청난 양의 쓰레기들이 쏟아져 나옵니다. 사실 이 오물의 신은 인간 문명에 대한 비판이기도 한데요. 쓰레기 때문에 오물 덩어리로 변한 강을 상징하죠. 오물의 신, 아니 강의 신은 고마움의 표시로 '센'에게 선물을 남기고 갑니다. 강의 신이 떠난 자리에는 아까 만난 '가오나시'가 마구잡이로 음식을 먹고 있습니다. 그 사이 잠시 쉬고 있던 '센'은, 용의 모습을 한 '하쿠'가 한 무리에게 쫓기는 모습을 봅니다. '센'은 '하쿠'에게 가던 중 마구 음식을 먹어 거대해진 가오나시와 마주치게 됩니다. '가오나시'는 자신에게 친절하게 먼저 인사해 준 '센'에게 금덩이를 선물하며 호감을 보이지만 '센'은 거절하고 '하쿠'에게 달려가죠. 거절을 당한 '가오나시'는 사람들을 잡아먹으며 본색을 드러내기 시작합니다. 한편 '하쿠'를 다시 만난 '센'은 '유바바'의 쌍둥이 언니 '제니바'를 만나고, '하쿠'가 그녀의 도장을 훔친 사실을 알게 됩니다. 마녀의 도장답게 거기엔 무시무시한 죽음이라는 저주가 걸려있었죠. '센'은 '하쿠'를 구하기 위해 '제니바'를 찾아가 도장을 돌려주기로 결심합니다. 다시 정상으로 돌아온 '가오나시'와 함께 기차를 타고 '제니바'의 집에 도착한 '센'. 착한 마녀 '제니바'는 모두 용서하고 선물을 주며, "한 번 일어난 일은 잊지 못하는 거야. 기억해 내지 못하는 것뿐이지."라는 말을 남깁니다. 다시 돌아가려고 집을 나서는데 회복한 '하쿠'가 문 앞에 와있습니다. '하쿠'와 함께 돌아가던 '센'은 '하쿠'의 진짜 이름을 기억해 냅니다. 사실 '센'과 '하쿠'는 이미 만난 적이 있었기 때문이죠. '치히로'가 어렸을 때 개천에 빠졌었는데 그 터에 아파트가 들어섰다는 엄마의 이야기가 문득 떠오르면서, 그 하천의 이름이 '코하쿠'였다고 말하죠. '코하쿠'라는 진짜 이름을 말해주자 '하쿠'의 저주가 풀립니다. 바로 저주를 푸는 마법의 주문은 자신의 진짜 이름이었던 거죠. 이제 집으로 돌아갈 일만 남은 '센'은 돼지들 중에 부모님을 찾으라는 '유바바'의 마지막 탈출 미션을 받게 됩니다. '센'은 단번에 이곳에는 부모님이 없다며 수수께끼를 맞혀버리죠. 그렇게 인간 세상으로 돌아갈 수 있게 된 '센'은 이름을 되찾은 '하쿠'와 작별합니다. 저주가 풀린 부모님은 터널 안에서 있었던 일을 기억하지 못하고 집으로 가자고 하죠. '치히로'는 터널 저편에서 있었던 일은 모두 잊은 것 같지만, '제니바'가 선물로 준 머리끈을 여전히 매고 있습니다. 한 번 일어난 일은 절대로 잊을 수 없는 법이죠.

    행방불명 된 '나'를 찾는 과정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은 어떻게 보면 진짜 행방불명된 '나'를 찾는 과정으로도 볼 수 있습니다. 누구나 각자의 상처와 아픔을 지닌 것처럼, 이곳 온천장을 찾는 다양한 캐릭터들 역시 나름의 상처와 아픔을 지니고 있는 토속신들인데요. 농업을 관장하는 무의 신 '오 시 라사마', 병아리 신 '오오토리사마', 소 형상을 하고 있는 요괴 '우시오니', 나무 도깨비 '오나마사마'까지 다채로운 신들의 향연을 볼 수 있죠. 자연재해의 위협이 빈번한 일본이기에 자연에 대한 두려움과 경외로 탄생한 다양한 신들이 있다는 속설입니다. 또 신들이 쉬어가는 곳의 배경이 온천탕인 점도 신선한데요.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이 일본의 전통문화와 설화를 소개하는 한 다큐멘터리를 보게 되는데, 신들이 온천에서 피로를 푸는 이야기를 발견하면서 영감을 얻었다고 합니다. 이 영화의 온천장은 단순한 휴식처가 아니라 상처받은 신들이 스스로를 치유하러 오는 곳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수많은 신들 중 가장 큰 감명을 준 오물의 신. 엄청난 악취로 환영을 받지 못하는 오물의 신이 '치히로'의 도움으로 몸 속의 쓰레기를 제거하면서 맑은 강의 신으로 돌아가는 모습을 보았을 때, 속이 뻥 뚫릴 정도로 희열과 감동을 느꼈습니다. 실제로 강을 청소하는 경험을 해 본 '미야자키' 감독은 실제로 강에 버려진 폐자전거부터 어마어마한 쓰레기들을 목격해 충격을 받았었죠. 이처럼 기본적으로 '미야자키' 감독의 작품에는 환경 보호에 대한 메시지가 녹여져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인간이 초래한 환경 파괴에 대한 비판적인 성찰을 꾸준히 작품 속에 담아왔다고 할 수 있습니다. 또 하나의 유명한 캐릭터, 바로 저도 너무 좋아하는 '가오나시'인데요. 일본어로 '얼굴이 없다'는 뜻으로 얼굴이 없어서 항상 가면을 착용하고 있죠. 시나리오 초기에는 없었던 캐릭터였으나, 영화 제작 초반 러닝타임이 너무 길었기 때문에, 스토리를 함축하는 강렬한 캐릭터를 만들기 위해 탄생했습니다. '가오나시'의 폭발적인 인기의 원인을 보자면, 현대인의 속성을 유사하게 지니고 있다고 볼 수 있는데요. 폭식을 하면서도 계속해서 배고프다고 하는 '가오나시'의 채워지지 않는 허기는, 현대인의 욕망과 공허를 나타내고 있다고 할 수 있죠. 또 사소한 친절 하나에 온 마음을 뺏길 만큼 모두가 안고 사는 외로움을 엿볼 수도 있습니다. 외로운 '가오나시'에게 작은 친절을 베푼 '치히로'. 그녀에게 모든 걸 바치는 '가오나시'를 보며 현대인들이 그 외로움에 동질감을 느끼지 않았을까 합니다. 이처럼 '미야자키' 작품의 캐릭터들을 살펴보면, 각자의 상처와 결핍을 지닌 캐릭터들이 등장하는데요, 결국 서로의 도움으로 그 상처를 치유해 내는 스토리죠. 모두가 아픔이 있기 때문에 절대악이 없다는 것도 특징입니다. 한편, 돼지로 변한 부모가 의미하는 바도 추측해볼 수 있는데요. 게걸스러운 돼지의 식욕에 인간의 탐욕을 빗대어 표현했습니다. 특히 마지막에 돼지들 중에 진짜 부모를 고르라는, 객관식으로 제시된 문제에 자신만의 답을 한 '치히로'의 모습은 스스로의 선택을 믿고 시험에 들지 않는 모습을 보여줬는데요. 이처럼 기성세대가 아닌 미래세대에게는 희망이 있다는 믿음을 꾸준히 작품에서 나타내는 '미야자키' 감독은, 문제를 해결해 내는 어린이를 주인공으로 등장시키죠. 또 '센'이라는 이름에도 의미가 있는데요. 센(千)은 한자로 숫자 '1000'을 나타내는데, 천 명의 무리 중 하나가 되라는 획일성을 상징하는 이름입니다. 누군가의 이름을 박탈하는 건 노예를 만드는 방법 중 하나인거죠. '이름'을 잃으면 '정체성'을 잃는 것임을 너무나도 잘 아는 두 아이들은 '온전한 자신'을 상징하는 본래의 이름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죠.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비로소 꽃이 되었다는 시도 있죠. 이러한 과정을 통해 남을 도울 줄 알고, 친절을 베풀 줄 알며, 책임감을 가지고 행동하고, 두려움에 맞서 싸울 줄 아는.. 자신의 진짜 모습을 깨닫는 것이 '미야자키식 성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열 살짜리 아이의 자아를 찾아가는 과정을 보여주는 것 같지만, 사실을 우리 모두의 자아에 대한 이야기죠. 세상을 살다보면 예전의 자신의 모습을 잊고 살아가게 됩니다. 가오나시처럼 가면을 쓴 채 정체성을 상실하며 살아가죠. '센'과 '치히로'의 모습을 보면서, 정의롭고 친절했던 내 안의 '치히로'를 다시 발견할 수 있는 시간을 가져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행방불명된 '나'를 찾는 과정이 담겨있는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요?

    '터널을 지날 때'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이 또 다른 감동으로 다가오는 이유는, 제가 정말 존경하는 '이동진' 평론가의 이 영화에 대한 평론인 '터널을 지날 때' 라는 글입니다. 한 구절도 빼놓을 수 없어서 그대로 전달하고 싶지만 중요 부분만 공유드릴게요. "아무리 마음이 아파도 뒤돌아보지 마세요. 정말로 뒤돌아보고 싶다면 터널을 완전히 벗어난 뒤에야 돌아서서 보세요. 치히로가 마침내 부모와 함께 새로운 삶의 단계로 발을 디딜 수 있었던 것은 터널을 통과한 뒤에야 표정 없는 얼굴로 그렇게 뒤돌아본 이후가 아니었던가요." 영화의 정점을 찍어주는 이보다 더 완벽한 평론이 세상에 있을까요. 우리 인생은 후회와 미련, 뒤돌아보기의 연속입니다. 저만 그런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지금 이 순간에도 돌아가고 싶은 과거의 한 시절이 떠오르는 미련쟁이입니다. 그것은 지나간 젊음일 수도, 놓쳐버린 사랑일 수도, 다시는 돌아갈 수 없음을 알기에 미련하게 잡고 있는 과거일 수도 있죠. 그만큼 좋았던 시절도, 아쉬웠던 시절도 모두 놓아주지 못해 그런 것 같습니다. 뭐가 됐든 훌훌 털고 이 터널을 벗어나면 그만큼 성장할 거라 이 악물고 다짐했던 적도 있었죠. 하지만 그것은 제 의지가 아니었습니다. 한 뼘 성장한 것은 맞을 수 있으나, 터널을 지나든 지나지 않든 돌이킬 수 없는 과거라는 건 이제와 돌이켜보니 알게 됐죠. 추억은 추억일 때 아름답다고 했던가요. 과감하게 버릴 수 있는 것이 더 큰 용기라고 생각해요. 아무리 마음이 아파도, 더 아파지기 전에 떨쳐버리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용기. 그것이 가장 필요한 순간에 한 걸음 앞으로 내디뎌 터널을 빠져나갈 수 있는 사람이 가장 강하고 용기 있는 사람이 아닐까 싶습니다. 해내면 '센' 아니 '치히로'처럼 어둡고 도저히 빠져나갈 수없을 것만 같은 답답하고 긴 터널을 완전히 벗어난 이후에 내 삶을 찾아 힘차게 나아갈 수 있을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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