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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에서 가장 찬란하고 아름다운 순간, 영화 <화양연화> 리뷰영화 2024. 2. 24. 17:44
인생에서 가장 찬란하고 아름다운 순간, 영화 <화양연화> 리뷰
영화 화양연화 포스터 인생에서 가장 찬란하고 아름다운 순간, <화양연화> 스토리
인생에서 가장 찬란하고 아름다운 순간을 뜻하는 <화양연화>의 스토리를 먼저 살펴보겠습니다. 영화의 시작은 함께 같은 날 두 쌍의 부부가 이사를 오면서 짐이 뒤섞이며 시작되는데요. '진 선생'의 부인 '소려진'과 '주 부인'의 남편 '주모운'은 각각의 배우자들과 함께 좁은 홍콩의 아파트에서 일상생활을 공유하며 자주 마주치게 됩니다. 그러던 어느 날 저녁 식사를 하려고 아내의 직장을 찾은 '주모운'은 아내의 직장 동료에게서 불편한 이야기를 듣습니다. "오늘 아내가 일찍 가겠다고 말하지 않던가요?" 왜 슬픈 예감은 틀린 적이 없을까요. 아내에게 통화를 해보니 아내는 '주모운'에게 일 때문에 밤새도록 회사에 있어야 한다고, 걱정 말고 먼저 자라는 말을 남기죠. 주모운은 아내에게 다른 일이 있다는 것을 예감하게 되죠. 확실하진 않지만 '진 선생'의 부인 '소려진'도 이미 어느 정도는 눈치를 채고 있습니다. 배우자의 외도를 알게 된 두 주인공의 심경은 복잡해집니다. 소려진과 주모운은 비좁은 아파트 복도를 스쳐 지나갔던 것처럼, 동네의 좁은 골목에서 다시 마주칩니다. 비가 많이 내리는 어느 날 주모운은 소려진에게 한 가지 질문을 합니다. "요즘 남편이 안 보이시던데" "또 해외출장 나갔어요. '주 부인'도 요즘 안 보이시던데.." "장모님이 몸이 안 좋아서 처가에 오래가 있어요." 그렇게 두 사람의 의심은 점점 확신으로 바뀝니다. 두 사람은 서로의 넥타이과 가방이 각 배우자의 것과 같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둘의 불륜을 확실하게 알아차리게 됩니다. "그 넥타이 어디서 사셨나요?" "모두 아내가 사다 줍니다" "제 남편도 똑같은 넥타이가 있어요." "제 아내도 같은 핸드백이 있죠." 배우자들의 만남, 그 시작이 궁금했던 '소려진'과 '주모운'은, 두 배우자들이 했을법한 만남의 시작을 상상하며 따라 해 보기 시작합니다. 둘이 마주 앉아 배우자들의 외도를 따라 해 보며 식사를 하는 장면을 보면 옷이 수시로 바뀌는 것을 알 수 있는데, 그만큼 여러 날 동안 했다는 것을 유추해 볼 수 있습니다. 배우자들이 외도를 하며 서로에게 뱉어냈을 말을 상상하며 따라 하는 둘의 모습은 처량함을 넘어 처절해 보이기까지 합니다. 배우자의 불륜으로 상처를 입은 두 사람은, 조금씩 시간이 지나면서 서로에게 끌리기 시작하죠. 그 마음이 어디서부터 시작된 건지, 왜, 언제부터 변한 건지 그들 스스로도 알 수 없습니다. 한편, '주모운'이 무협소설을 쓰기 시작하면서, 이제 두 사람에겐 배우자들의 불륜을 상상해보는것 외에도 함께 해야 할 이유와 대화를 나눌 주제들이 새롭게 하나둘씩 생겨납니다. 이제는 자기 자신과 서로를 속이는 것도, 부부가 오래 떨어져 지내면 안 좋다는 주변 이웃들의 걱정까지, 사람들을 속이는 것도 힘들어졌습니다. 장대비가 쏟아지던 날 '주모운'은 그녀를 지키기 위해 싱가포르로 떠난다며, 이별을 연습하자고 힘겹게 말을 꺼냅니다. 언제나 그랬듯, 다른 이유를 만들어야만 함께할 수 있었던 두 사람은, 이별의 순간마저도 서로의 마음을 다 드러내지 못하고 연기를 할 수밖에 없죠. '다시는 전화하지 말아라, 남편을 잘 지켜라'라는 '주모운'의 마지막 말에 비록 연습이지만 끝내 울음을 터뜨리는 그녀. 그런 그녀의 눈물을 보며 '주모운'은 '나와 같이 가겠소?'라는 진심을 전하지 못하고 비밀스럽게 가슴 한편에 숨겨두고 말았습니다. 시간이 흐른 뒤 싱가포르 회사로 전화를 거는 '소려진'과 아무 말 없는 수화기 너머 그녀를 떠올리는 '주모운'. 그 뒤로도 두 사람은 서로의 흔적을 찾아 몇 번을 지나치지만, 가느다란 인연의 끈은 이어지지 않습니다. "인생의 가장 아름다운 때를 뜻하는 화양연화입니다.'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말에 서로를 떠올리는 두 사람. 어쩌면 인생에 두 번 다시없을지도 모르는 '화양연화'는 앙코르와트 사원에서 '주모운'의 입을 통해 잠깐 세상에 나왔다가 다시 꼼꼼하게 숨겨집니다. 이 영화에서 불륜을 저지른 주인공의 배우자들은 끝까지 얼굴을 볼 수 없습니다. 비밀을 눈치챈 두 사람만이 상처를 공유하고 흔들리기도 하죠. 하지만 결국 두 사람은 '우리는 그들과 다르니까요'라는 말만 되풀이하며 끝나게 됩니다. '그 시절은 지나갔고, 이제 거기 남은 건 아무것도 없다. 먼지 낀 창틀을 통해 과거를 볼 수 있겠지만, 모든 것이 희미하게만 보였다.'
홍콩 영화계, 90년대 아시아 영화의 아이콘 '왕가위' 감독과 미장센
<화양연화>로 정점을 찍은 홍콩 영화계의 대표적인 감독이자, 90년대 아시아 영화의 아이콘인 '왕가위' 감독은, 명성만큼 성공한 작품들이 많고 그만의 독특한 미장센으로 유명합니다. 그의 대표작으로는 <아비정전>, <중경삼림>, <해피 투게더>, 그리고 <화양연화>가 있습니다. 이외에도 워낙 대표작이 많기 때문에 그가 작품을 만든 순서대로 영화를 보신다면, 시간의 흐름에 따라서 그가 어떻게 영화를 만들어왔는지, 어떻게 변해가는지를 느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개인적으로 '왕가위' 감독의 영화를 처음 접하기에 가장 좋은 영화로 <중경삼림>을 꼽을 수 있는데요. '왕가위'라는 이름을 세상에 알린 작품이기도 하며, 화려한 색감과 독특한 촬영기법의 뛰어난 영상미, 두 가지 이야기가 하나로 구성된 옴니버스의 스토리라인은 입문자가 접하기에 좋다고 생각됩니다. 몇 가지 작품을 거친 후 <화양연화>를 본다면 '왕가위' 감독만의 작품 세계를 더욱 깊이 이해하고 감동을 느낄 수 있습니다. 가장 정점을 찍은 작품 <화양연화>는 2000년도에 나왔는데요. 칸 영화제에서 주연 배우인 '양조위'가 남우주연상을 수상했고, 21세기에 가장 위대한 영화 2위를 차지하는 등 여러 방면에서 업적이 뛰어나죠. 특히나 돋보이는 감독 특유의 미장센, 그리고 분위기를 압도하는 음악과 미술까지, 감동포인트가 다채롭습니다. <화양연화>는 '왕가위' 감독이 드러낸 고독한 중년 남자의 외로움과 쓸쓸함, 이성과 본능 사이에서 방황하는 모습 등 하지 말아야 할 것들이 많아진 나이에 대해 이야기했는데요. 이 영화를 통해 모두가 기피하는 감정 묘사에 과감하게 도전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서로에게 끌리지만 도덕적 잣대에 의해 감정을 연기하는 채로 끝까지 서로의 마음을 드러내지 않는 두 사람의 모습은, 죄책감과 이성 사이의 미묘한 감정선을 표현함으로써 대중들에게는 불편하면서도 공감이 가는 모습일 것입니다. 특히 가장 인상적으로 다가왔던 연출 중 하나는, 보통 이성의 감정을 표현할 때 대중의 시선을 끌기 위해서 노골적인 장면을 포함시키기 마련인데요. <화양연화>는 그런 직접적인 장면이 하나도 없고 오로지 느낌만으로 서로의 감정을 섹슈얼하게 전달하는 것이 놀라웠습니다. 이 영화를 본 한 감독의 표현을 빌리자면 '말초신경이 아닌 중추신경을 자극하는 느낌'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말이죠. 보통의 로맨스 영화에서 보기 힘든 연출법이기에 더욱 특별한 '왕가위' 감독만의 '영상 언어'가 훌륭한 것 아닐까 생각됩니다. <화양연화>라는 제목의 뜻 그대로, '왕가위' 감독이 선사하는 절정의 아름다움이 여실히 드러난 영화인데요. 다음번엔 제가 너무나 사랑하는 '왕가위' 감독과 배우 '양조위'에 대해서도 한 번 소개해보도록 하겠습니다.
<화양연화> 그 시작과 끝, 비하인드 스토리
<화양연화>의 시작과 끝에 대한 비하인드 스토리도 흥미진진한데요, 사적인 리뷰를 포함해 전반적으로 주목할만한 포인트들을 이야기해보겠습니다. '왕가위' 감독은 <화양연화>를 소개할 때 '시작은 하지만 어떻게 끝날지 모르는 여행과도 같은 영화'라고 표현했는데요. 앞서 말씀드렸던 영화 <해피투게더> 이후 <음식에 관한 세 가지 이야기>라는 3부작 프로젝트를 기획하는 도중에 스토리가 길어지자, 그중 두 번째 에피소드를 확장하면서 시작됐습니다. 이웃인 두 남녀가 각자의 배우자가 외도 중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는 이야기인 거죠. <화양연화>의 끝도 비하인드가 있는데요. 칸 영화제 경쟁 부문에 초청받아 그 일정에 맞춰야 하는 시점이 다가와 영화의 완성이 시급해지자, '양조위'가 앙코르와트에서 사랑을 묻는 장면으로 마무리 됐는데요. 이렇게 급하게 완성된 것이 이 영화의 운명이며 이 자체로 이 영화가 마음에 든다는 말을 남겼다는 후문입니다. 특히나 이야기의 스토리에서 '우리는 그들과는 다르니까요'를 계속해서 말하던 '소려진' 캐릭터가 처음에는 '불륜을 안 하는 내가 더 우월하다'라고 생각하는 캐릭터였고, 이에 남자 주인공인 '주모운'이 복수하는 이야기로 구성했었는데요. 결국에는 이 복수엔딩이 빠진 채 영화가 완성이 된 거죠. 저는 이렇게 결말이 되었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에게 두고두고 회자되며 사랑받는 영화가 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여기에 '크리스토퍼 도일' 촬영 감독과의 협업이 영화의 완성도를 높이는데 한 몫을 했다고 생각하는데요. 이전에도 <중경삼림>과 <타락천사>에서 화려한 촬영 기법을 보여준 '크리스토퍼 도일'. 그에 비해 <화양연화>는 굉장히 안정된 구도로, 카메라의 움직임이 절제된 단정한 화면으로 꽉 채우고 있습니다. 거의 미동도 없는 화면 사이에서 불쑥 등장하는 슬로모션 샷이 감동을 더해주는 포인트죠. 바스트 샷 아래로 최소한만 담아낸 구도로 극적인 효과를 주는 장면들도 좋은 연출의 부분이라고 생각됩니다. 즉 '선택적 클로즈업'이라고 볼 수 있죠. 때때로는 '주모운' 역할의 '양조위'의 시점을 보여주는 듯한 카메라 움직임도 보입니다. 그녀의 모든 순간을 천천히 담아내며 사랑하는 사람과의 시간을 정지하고 싶은 마음을 표현하면서, 애틋하고도 쓸쓸한 감정이 화면을 통해 고스란히 관객들에게도 전해집니다. 관객들이 '소려진' 역할의 '장만옥'을 보며 어느새 '양조위'의 감정에 이입하는 효과를 불러일으키죠. <화양연화>의 미장센을 더욱 끌어올린 건 예술작품 같았던 의상도 있습니다. 바로 중국의 전통의상 치파오인데요. 그 자체로도 아름답지만 '장만옥' 배우에게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딱 맞는 의상인 것 같습니다. 또한 단순히 예쁜 디자인을 고른 것이 아니라 '장만옥' 배우의 아우라를 완벽하게 분석해 어떤 의상이 그녀의 아름다움을 가장 잘 돋보이게 드러나게 할 수 있을지, 주인공의 상황과 감정에 어울리는 스타일링을 미술감독이 완벽히 파악한 것으로 보입니다. 이번 영화에서는 무려 21벌의 치파오를 착용했고, 특히 극 중에서 10벌은 종이로 제작해 종이만의 독특한 질감을 연출했습니다. 의상의 질감까지 섬세하게 공들인 예술의 경지라고 볼 수 있죠. 저도 몰랐던 포인트인데, 배우의 감정에 따라서 옷의 색이 바뀌기도 합니다. 초록색은 불륜의 상징으로, 영화 초반에 초록색 의상이 굉장히 많이 나오는것을 알 수 있고, '소려진'이 처음으로 호텔을 찾아가는 장면에서는 사랑을 상징하는 빨간색과 순수를 상징하는 흰색 의상을 입음으로써, 이 두 감정이 충돌하고 망설이는 마음을 반영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두 번째로 호텔을 찾아갔을 때는 전체가 다 빨간색 의상으로, '주모운'에 대한 사랑이 더 강렬하고 커졌음을 암시하죠. 이 둘이 탄 택시의 지붕까지 빨간색인 장면에서는 섬세한 미적 표현에 신경 썼음을 다시 한번 알 수 있습니다. 두 사람이 헤어질 때는 보라색, 초록색, 파란색 등 여러 가지 색이 혼합된 의상을 입었는데, 그 둘의 혼란스러운 마음을 반영한 것으로 볼 수 있죠. 끝내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한없이 아름다웠던 두 사람이 '화양연화'를 마음 속에 품은 것처럼, 홍콩 영화의 가장 아름다운 순간을 담은, 홍콩과 홍콩 영화의 '화양연화'를 그린 작품은 아니었을까 합니다. 당신의 '화양연화'는 언제인가요? 모두가 인생의 '화양연화'의 순간을 감격적으로 맞이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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